하누리이야기

5년만의 제주여행

2011-01-08 00:56:09, Hit : 5015

작성자 : 무교無巧

제주는 환상적인 섬이다. 2006년 마라도여행을 마지막으로 제주에 가 보지 못하다가 간만에 길이 열린다. 11월 하누리 기회로여행 그리고 새해맞이 일출여행.

마음은 기쁘지만 한편으론 가지 못하는 아내의 성화가 미안하다. 일로 가는 길일망정 못가는 사람은 부럽다.

성산 일출봉에서 해맞이를 한다.

비자림 옆에 월랑봉과 작은 월랑봉이 부른다. 제주 사람들은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이라 부른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손에 감기는 말인가? 얼마전 제주를 사랑한 사진기사 김영갑과 그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 때의 시진이 기억에 오래남는다. 아끈다랑쉬오름과 그 옆의 벌판으로 커다란 쌍무지개가 걸려있었다. 그런 사진은 오로지 기다림과 사랑으로만 찍어낼 수 있을 듯하다. 어쩌면 이번 여행 중에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 갈 수 있을 지 모른다고 기대한다. 두모악이란 한라산의 옛이름이다.

만장굴도 부른다. 처음에는 미천굴 일출랜드 쪽이 떠올랐는데 이내 만장굴로 바뀐다. 여긴 여러 번의 제주 여행에도 비껴간 곳이다. 거문오름 동굴계에 속하는 만장굴은 길이만 7km가 넘는다.

그리곤 김녕으로 나가는 것이 아닐까?

둘째 날은 잡아보니 사려니 오름이다. 우연히 들었던 곳인데 찾아보니 제법 괜찮을 듯하다. 중산간에 산책길 같은 코스에 좌우에 있는 오름을 오르고 내리는 길이다. 기가 좋다고 기를 받으러 간다는데 우리에겐 마음의 여행이 될 것 같다.

여기까기가 본 일정이었다. 그리고 올라가는 시간을 계산하면 거기서 끝내야 한다. 그런데 비행기가 모두 예약되어 있어서 부득이 3일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3일은 무릉리 생태학교를 중심으로 잡힌다. 거기서 자고 어딘가 올레길을 돌아나가나 보다고 생각했다.

31일 공항에서 해를 보낸다. 4시 반 비행기라 하늘에서 마지막해를 보리라 생각했는데 5시 반으로 지연되면서 기다리는 동안 창 너머로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 해가 가는 걸까? 떠나간 시간은 어디로 들어가는 걸까? 시간은 가고 새로운 시간이 온다.
6시 반 비행기가 떴다. 하늘길도 기류가 불안해서 몇 번 떨린다. 제주에 내리기 전에는 제법 많이 흔들린다. 제주공항에 내리고 나서야 모두 안심한다.

숙소에 문제가 생긴다. 돌락님이 예약한 숙소는 눈길이 막혀서 갈 수 없다 한다. 내가 예약한 곳도 눈길이 막혔으니 제주에서 자라고 연락이 왔다. 시외터미널에서 보니 성산 가는 막차는 떠났다. 포기하려는데 옆에 표선가는 버스가 있다. 가까이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곡절끝에 성산에 가는 택시를 탔다. 눈이 엄청 내린다. 눈의 나라에 온 것 같다. 성산에 도착해서 숙소를 구하려니 모두 불을 끄고 없다. 그나마 몇군데 불이 켜있는 곳도 방이 없다. 그때 교회예배를 보고 가시던 아주머니 한 분과 말을 텄다. 방을 못 구한다고 하니 그 분이 자기 집이라도 괜찬겠냐고 하신다.

시골집이다. 여행와서는 이런 우연이 더 좋다. 각자 씻고 내일을 위해 잠을 잤다.

새벽 5시 눈을 뜬다. 성산 일출봉을 오르려면 6시 넘어서 나가도 된다. 그런데 잠이 안 온다. 짐을 꾸려 나갔더니 길이 막혔다. 떡국먹고 기다리라고 한다. 눈 속에 새 해의 마음을 얼려 도장을 찍는다. 이 마음은 여기 그대로 있을 것이다. 다른 분들에게도 그대로 전달한다. 마음의 도장을 새기고 언덕에 올라 해맞이를 한다. 새해맞이다. 추워도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 자신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다. 더 큰 꿈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나은 한 해를 위해. 그 힘들이 모이면 역사가 될까?

비자림 가는 길이 막힌다. 돌아서 만장굴에 먼저간다. 그런데 추운데 오래 떨어서그런지 몸이 좀 춥다. 굴 속은 14도다. 그래도 약간은 한기가 느껴진다. 굴 안에 들어가 밖을 보니 토끼모양이다.

만장굴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다랑쉬오름 입구에 내린다. 활공장이래서 활만드는 공장인가 했더니 행글라이더 같은 비행기구 활공장이 800미터 남았다는 뜻이었다. 눈이 많이 쌓여서 자동차가 꼼짝을 못한다. 월랑봉 오르기는 쉽지 않다. 지그재그 한참을 돌아서야 정상 능선에 오른다. 주위가 탁트였다. 이렇게 360도 트인 곳은 많지 않다. 어디가 한라산일까? 저기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맞은편 이끈다랑쉬는 사랑스럽기만하다. 이렇게 땀흘리며 올라오면 새로운 장관이 펼쳐진다. 그리고 거기부터 시작이다. 이제 영혼의 자리에 오른느낌이다. 그런데 거기서 다시 열 두 대문을 열라고 한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시작이다.

능선을 한바퀴돌아 다시 내려간다. 여기 살고 싶다. 그러나 4.3 때 이곳에 있던 마을 하나가 완전히 사라졌다. 마을 사람 모두가 죽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다. 아픈 기억을 간직한 곳이다.

반대편 아끈다랑쉬오름 가는 길은 아무도 가지 않았다. 느낌 대로 가는데 길이 없다. 돌아가는 게 상책이다. 50미터 정도 오르니 벌써 능선이다. 여기선 자유다.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발걸음을 남기며 하는 것 같다. 나는 눈위에 누웠다. 소록님을 불렀는데 듣지 못하고 가신다. 자신의 길을 벌써 열고 계신 것이다. 억새가 사랑스럽다. 바람이 노래하고 억새가 춤추는 곳이다. 그 곳에 무덤이 하나 있었다.

세화에서 제주로 나와 동문시장에 들른다. 시장에 들르길 잘했다.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가게 중에 내 이름이 붙은 가게가 있다. 내 이름이 왜 여기 걸려있냐고 시비아닌 시비도 걸어본다. 막내 아들 이름이 내 이름이란다. 어머니한테 인사가 늦었다하니 주위에서 다들 재밋어한다. 나도 넉살이 좋아진 걸까? 예전에는 이렇게 할 줄 몰랐다. 다음에 제주에 들르면 꼭 사 드려야겠다.

고르고 그른 끝에 새 해 첫날 저녁은 생선이다. 다섯이 갈치 두 마리 광어 한 마리. 식당에 들어가 부탁하니 푸짐한 저녁이었다. 제주도 은갈치살이 부드럽고 맛있다.

둘째 날 숙소는 한라산 중산간의 군 휴양소. 한라산이 보이는 곳이다. 그런데 잠을 설쳐서 4시가 되기 전에 눈을 뜨곤 잠을 못 이뤘다.

사려니까지 갈 수 있을까? 사려니 숲길은 이 눈길에 뚫려있을까? 다행히 길이 열렸다고 한다. 지도와 인터넷으로만 보던 길을 찾아가려니 긴장이 된다. 다행이 길이 뚫려 사려니 숲에 도착할 수 있엇다. 생각한 만큼 좋은 곳이다. 커다란 삼나무들이 우리를 반긴다. 삼나무 숲에 눈이 내리면 영화 속 한 장면들과 겹쳐진다. 가지가 눈으로 옷을 해 입고 있다.

가다가 눈위에 누워본다. 좋기는 좋은데 조금 많이 시원하다. 한참 더 가서 이름을 쓴다. 눈 위에 주먹으로 찍어서 무교라 적는다. 주먹체도 나름 괜찮다. .

갈림길에서 발자국이 적은 쪽으로 갔는데 괴괭이를 돌아 성판악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앞서 간 사람들이 지켜 돌아왔다. 우리도 길을 돌렸다. 온 길을 돌아가 물찻오름으로 향한다.

물찻오름에 올랐다. 한라산은 가려서 희미하게 보인다. 여기서 사진을 몇 장 박고 누워 한라산을 바라본다. 보이지 않아도 거기 서 있을 것이다.

바람은 차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잠시 놓고 편히 쉬란다. 마음의 소리가 영혼의 소리다.

눈길이라 고관절 있는 데가 뻐근하다. 먼저 내려간다. 앞에서 물찻오름으로 오는 사람들이 있길래 먼저 비켜준다.

사려니자락으로 가는 길과 붉은 오름으로 가는 갈리는 삼거리에서 눈싸움을 한다.
뉸싸움에서 제일 위험한 순간은 던지는 때다. 내가 무언가 마음을 정한 때. 몸이 정해져있으니 상대의 눈에 쉽게 당한다. 실력이 좋은 검리님이 그런 때 많이 맞았다. 많이 맞히고 많이 맞았다. 같이 하고 싶은데 승부가 걸려있는 게임이라 심판을 열심히 보며 점수를 콜한다.

서귀포에 나가 바다를 보고 검리님이 가신다. 미안했던지 저녁 식사비도 한 장. 덕분에 저녁을 잘 먹었다. 다음에 갈 수 있다면 그 맛있고 친절한 할매뚝배기집으로 안내하리라.

서귀포를 나와 올레 11코스 시작점인 모슬포 항 근처에 숙소를 잡는다. 그리고 피곤해 이내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옛날의 그녀를 만난다. 사랑에 미련이 남았는가? 깨보니 3시와 4시 사이. 잠이 또 달아난다. 이번에는 잠을 제대로 못잔다.

6시 48분 첫차를 타려고 나왔다가 버스을 놓친다. 아침을 먹고 기다리지만 버스가 없어진다. 일주버스를 타고 신평리에 내려 저지로 가는 버스를 물으니 30분이나 남아있다. 우체국에 가서 딸아이 현진이에게 편지쓰고 시골 부모님께 귤 한 박스를 보냈다.

저지로 가는 버스에는 나 혼자다. 버스가 안 온 이야기를 하다가 기사님한테 귤 하나를 얻었다.

저지에서 올레 14코스로 가다가 저지오름 가는 길이 나오길래 올라갔다. 오르는 길에 묘지가 있다. 여기서 뭘해야 되는 것 같다. 얼신숙님과 소록님에게도 할 일을 체크해서 전해드렸다. 저지오름을 한 바퀴 돌아 전망대에 오르니 다랑쉬오름처럼 사방이 확 트여있다. 북으로 애월항 남으로 산방산. 날 좋다면 마라도까지 보일지 모른다.

한라산을 바라본다. 여기 오랫동안 사람이 살았고 또 바람이 불었다. 노늘 내가 갈 바다까지 길은 어디일까?

앞에 가던 여자분이 어리버리한 사람 보셨냐 하는데 부럽다. 전망대를 둘러보고 내려와 묘지 앞에서 그 영혼들을 위해 기도한다. 거기서 영혼의 길을 열어 영계로 보내는 기도를 하고 내려온다. 여긴 13코스길이다.

다시 14코스로 내려왔다. 여기 어디에서 여진님이 길을 잃었다. 밤이라 그리고 초행길이라 그랬을 거다. 밭옆으로 가다가 숲으로 들어간다. 혼자 걷기에 조용히 걷기에 좋은 길이다. 감귤이 먹고 싶긴 했는데 여긴 감귤밭이 거의 없다. 가는 길에 작은 열매를 땄다. 아니 아주 작은 콩이려나? 바닷가에 가까워지니 선인장 밭이 많다.

길이 나 있으면 길을 다니는 사람은 쉽다. 하지만 처음 그 길을 내는 사람은 쉽지 않다. 누군가가 걸을 수 있는 길을 내는 것은 하누리가 앞으로 할 일이다. 길과 사람이 소통하고 마음을 열어 놓듯이 하누리도 그런 길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바닷가 멀리 보일 듯한데 제법 우직한 소나무 하나가 반긴다. 반갑다.

고내포구에 나가니 파도가 반긴다. 우선 한 컷. 돌아보니 우주물이라고 써 있다. 바닷가에 흘러나오는 용천수인가보다. 식당에 가서 앉으니 창문너머 바다가 보인다. 여기서 김영갑을 만난다. 식당 한 켠에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이라고 적힌 사진이 있다. 반갑다. 제주를 사랑하는 식당답게 맛있는 성게미역국이다.

몸을 좀 따뜻하게 하고나서 무인카페에 가서 차 한잔 마신다. 차값은 2천원. 모두 셀프다. 사람들이 적어놓은 포스트잇이 두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잠깐 앉아 생각하다 나왔다. 길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여기서 느끼는 것은 무얼까 어쩜 이렇게 주인이 없고 모두가 주인이 되는 카폐도 좋겠다. 찻집하는 목양님 생각도 난다. 그래도 되지 않을까? 재밋고 독특하고, 아름다운 사연들이 쌓이고, 사람들이 잠시 마음의 숨을 쉬다 가지 않을까?

고내리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오늘은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많다. 옛날에도 버스를 많이 기다렸다. 오지 않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했다.

마지막 코스 수산봉이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올레길 13에서 16코스까지 조금씩 맛보고 있다. 14코스 구간을 빼면 거의 중요한 지점만 들르는 것 같다. 길 옆에 바로 수산봉이다. 한내 생각이 난다.  한내의 길은 스스로 여는 것이다. 누가 열어줄 수 있을까?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길을 열어줄 수는 없다. 스스로 준비하고 스스로 열어가야 한다. 가슴에 자신감 사랑 행복 책임 지혜 진실 능력 영혼의 일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정확하게 이 여덟인지는 모르겠다.

몸이 간당간당해서인지 이번 여행은 좀 자신이 없다. 잠을 못자고 추위에 떨었다. 아니 가기 전부터 좋지는 않았다. 내가 평소에 잘 관리하지 못한 탓이다. 누굴 탓하겠는가? 내 스스로 그 길을 택했다. 버스가 바로 와서 타고보니 제주 공항 쪽으로 가는 버스다. 동문시장에 가서 선물을 사고 공항으로 간다.

돌고보니 이번 제주도 여행은 무한대 모양으로 돌았다. 앞으로도 영원히 이 길은 스스로 돌고 있을까?

다희

어려운 여건에서도 묵묵히 길을 내고 그 길로 안내하시고..무교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스스로 준비하고 열어가는 한내의 길.. 가슴에 새겨야 할 여덟 덕목들..
머리 속이 맑아지는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01-09
10:31:27

한대만라

8가지가 무한대 모양(8자)으로 보이는것은? 스스로 준비하고 스스로 열어가야 하는 한내의 길에 대하여 의미 깊은내용과 함께 잘보았습니다. 이번 여행에도 역시 파이오니아(개척)의 길이었군요. 공적으로 감사드리오며, 이면에는 "무한 행복자"의 길을 가시는 모습이 보이십니다.

2011-01-09
14:51:04

소록素錄

한대만라님 요즘 어찌 지내시는지요,얼굴한번 보기 힘드네요,올한해 소망하시는 모든일들이 신묘하게 잘 풀리시길 기원합니다 한대만라님 화이팅!!!입니다...^^

2011-01-09
16:44:33

검리

수고 많으셨습니다. 무교님.... 이번 제주여행에서 제가 마음의 준비가 약간 부족한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잘 이끄시고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 멀었구나...라는걸 느꼈습니다.
올해는 좋은 일들이 많았으면하는 바램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11-01-09
17:32:08

무교無巧

오십보 백보랍니다. 저도 준비가 부족해서 힘들었습니다. 잘 드러내지 않아서 그럴 뿐이지요. 덕분에 좋은 회로여행이 되었습니다. 우리 뒤를 오는 분들도 이 코스를 걸으며 우리가 한 미션을 새겨보시면 얻는 것이 있지 않을까요?

예비한내님들 덕분에 좋은 길을 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01-09
19:39:29